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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 7 호 어쩌면 청춘은,

  • 작성일 2024-09-30
  • 좋아요 Like 2
  • 조회수 2024
정지은

어쩌면 청춘은,

정지은 정기자

 

Prologue. 청춘(靑春), 새싹이 돋는 봄철, 스무 살 안팎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

 

  여름날, 추적추적 기나긴 장마가 찾아왔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형형색색의 우산이 횡단보도를 장식하고, 달리는 차들의 헤드라이트는 빗물이 번져 거리를 물들인다. 나는 이 모습을 집 안에서 이불 속에 파묻혀 창문으로 지켜보길 좋아한다. 어릴 때는 웅덩이만 보면 머뭇거림 없이 첨-벙하고 뛰어들기 바빴는데, 요즘은 실내에 맞이하는 비가 가장 좋다. SNS를 보거나, 서점을 살펴보면 '청춘'에 관한 에세이나 글귀들이 참 많다. 살짝 들춰 읽어보기만 해도 괜스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어느 한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매력적인 글이 한가득이다. 그렇다면 청춘이 도대체 뭐길래 우리는 이토록 그 시간을 소중히 하고, 청춘에 머무르려 하는 걸까. 어릴 적 떠올리던 ‘청춘’은 그저 언젠가 찾아오길 기다리며 두근거리던 먼 미래였다. 당시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것만 같은 언니 오빠들이 부러웠고, 멋있었다. 마치 스무 살만 넘으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될 것 같았달까. 그러나 사전상 청춘의 나이에 놓여있는 나는 상상했던 청춘과는 낭만과 성숙함이 한 스푼씩 부족한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9살 시절의 나를 더 그리워하고 부러워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과연 지금 나의 청춘을 푸르게 잘 보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바라고 그려왔던 청춘의 모습이 맞는지 말이다. ‘새싹이 돋는 봄철’이라는 뜻의 청춘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 것일까.

 

Ep1. 소박했던 여름나기

 

  이상하게도 여름의 더운 공기와 초록빛으로 물든 나무들을 바라보면 어린 시절의 티 없이 맑았던 때가 떠오르곤 한다. 해가 쨍쨍하든, 비가 내리든 그 자체로 밖에 나가 뛰어놀기를 즐기던 그때 말이다. 그 시절의 우리는 분명 작은 것에도 설레고 행복해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기 바빴다. 개울가에서 놀다가 추워지면 햇볕에 뜨겁게 달궈진 바위에 누워 몸을 녹이고, 자전거를 타고 손끝으로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물놀이가 끝난 후에는 시원한 수박과 엄마표 떡볶이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던 그 시절. 그때의 반짝였던 여름은 지금의 나에게는 그리운 추억이자 사진첩 속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현재, 내가 맞이하는 여름은 어린 시절과는 한껏 다른 모습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다양한 감정을 알아차리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한 가지, 지금의 나는 이전보다 단순하고 다채롭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눈을 뜨고, 오늘 있었던 기분 좋은 일들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지금은 밀린 퀘스트를 달성하듯이 오늘 해야만 하는 것들을 머릿속으로 나열하며 잠에서 깨고, 오늘 몇 시간을 잘 수 있을지 계산해 알람을 맞추고 눈을 감는다. 어느 순간부터, 어릴 적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기던 것이 이제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다. 있는 그대로 만을 바라보던 그때와는 다르게 타인의 말과 행동을 파악하고, 나의 이익을 계산하기 바쁘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 또한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그 단순하게 사고하고, 순수하게 즐기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분명 청춘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어릴 적의 순수함과 소박함을 잃어가고 성숙함만이 그 자리를 채우는 듯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Ep2. 누군가에게는 바다의 짭조름한 냄새가, 누군가에게는 맛있게 익은 옥수수의 구수한 냄새가

 

  모두 ‘여름’하면 떠오르는 고유의 ‘여름 냄새’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골에 살던 나였기에 유독 자연과 친했다. 나는 여름날을 생각하면 후덥지근한 공기 속 축축한 풀냄새와 아빠가 벌꿀을 수확할 때 나던 달달구리한 냄새가 콧잔등을 스친다. 한창 성장기에 놓여있는 아이들처럼 마당에 심어진 잔디도 여름 장마철만 지나면 쑥쑥 자라기 바빴다. 부모님을 도와주겠다며 잔디깎이로 잔디를 깎다가 숭덩숭덩 구멍이 나 있다며 애정이 섞인 잔소리를 들은 기억도 있다. 그 잔소리 속에도 나는 풀냄새가 참 좋았다. 날아다니는 벌이 무서우면서도 여름 한정으로 수확할 수 있는, 여러 종류 꿀이 합쳐진 잡화꿀 특유의 칼칼하면서도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일하시는 아빠의 주변을 알짱거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여름' 하면 어떤 이는 더위를 피해 들어간 주차장 속 특유의 냄새를, 어떤 이는 시원한 바다의 짭조름한 바람의 냄새를, 어떤 이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누군가와 함께 걷던 여름밤 길가의 냄새를 떠올릴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각자에게 살며시 떠오를 모든 냄새가 모여 여름 냄새를 만들어내고, 그 냄새는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처럼 여름의 냄새는 우리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냄새를 맡을 때마다 우리는 다시금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열정과 꿈으로 가득 찼던, 순수하고 빛났던 그 시절을 말이다. 그때는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뭐든 상상할 수 있었다. 반면, 현재는 9살의 그때보다 현실적이고, 나 자신과의 더욱 타협적인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여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러나 덜 감상적이고, 덜 감성적이다. 그때는 여름이 주는 그 향기에 푹 빠지고자 했다면, 지금은 더위를 피해 하루라도 빨리 카페에 들어가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기 바쁘다. 아주 조금은 현실에 지쳐 마주하는 여름을 피하기만 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Epilogue. 청춘의 진정한 의미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어쩌면 이런 아쉬움이 있기에 우리는 한 걸음 더 성장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 자체,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하고 고민하는 자체가 우리가 마치 청춘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다채롭던 여름이 있었기에 청춘의 여름이 존재하고, 청춘의 여름에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은 어린 시절 여름의 기억을 더욱 소중히 만든다. 어린 시절의 여름이 지금의 프롤로그였다면, 지금의 여름은 먼 훗날의 새로운 프롤로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설렘이 함께 피어난다. 

 

  청춘을 가득 담은 잔나비의 노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의 가사처럼, 지나버린 우리들의 뜨거웠던 여름은 기억 속에 묻어두고, 새로이 찾아오는 청춘의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해보는 건 어떨까. 분명 지금과도 똑같이 뜨거웠던 여름이지만 흘러간 시간과 추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가올 여름도 소중히 보내다 보면 어느샌가 그 여름들이 쌓이고 쌓여 앞으로 만들어 갈 새로운 에피소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작전명 청-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우린 모두 타오르는 젊음이기에 흔들릴 수 있어. 그래 무너질 수 있어. 일어나라 작전명 청춘.’ 지금의 우리가 넘어지고 흔들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함부로 자책하지 말고 쉽게 지치지 않도록 하자.

  늘 그래왔듯이 우리들의 일상은 기록으로는 남지 않더라도 기억 속에는 분명 고이 보관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아쉬웠던 기억을 잊지 말고, 새로 맞이할 앞으로의 여름을 후회 없이 보내보기로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 여러분도 남은 여름을 청춘의 뜻처럼 푸르게 보내길 바란다.

 

어쩌면 청춘은, 여름.